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정난의 변 (문단 편집) == 거병 == 이렇게 분위기가 극도로 험악해질 무렵, 연왕 주체는 수도 남경에 머무르고 있었던 세 아들을 돌려보내 달라고 부탁했다. 태조 주원장이 붕어할 무렵, 연왕 주체도 수도 남경으로 오려고 했었지만, >'성가신 일하지 말고 본인들 일이나 잘 해라' 라는 주원장의 유조 때문에 그냥 봉국에 머물면서 자신의 아들들만을 보냈던 것이다. 이에 제태는 세 사람을 인질로 잡아두어야 한다고 권했지만, 황자징은 적을 방심하게 하려면 이들을 풀어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. 결국 일은 그렇게 되었는데 황자징이 이때 주체의 아들들을 풀어주지 않았다면 미래의 인종 [[홍희제]](洪熙帝) [[주고치]](朱高熾)는 없었으리라. 당시 북평에는 조정에서 파견한 도지휘사(都指揮使) '''사귀'''(謝貴)와 포정사(布政使) '''장병'''(張昺)이 머물렀다. '''[[요광효]]'''(姚廣孝)가 이를 계획하고서 7월, 주체는 그들을 갑자기 공격해서 모두 죽이고, 황제 옆의 간신인 제태와 황자징을 제거한다는 이유로 거병했다. 연왕의 반란군은 >'''정난군'''(靖難軍) 으로 불렸는데 '''황제의 옆에서 문제를 일으키는 난을 다스린다'''는 뜻이었다. 주체는 정난군을 일으키면서 조정에 상소하는 형식으로서 격문을 발표했는데 격문에는 태조 홍무제가 남긴 조훈이 인용되었다. ||'''"조정에 올바른 신하가 없고, 안에 간악한 자가 있다면, [[친왕]]은 곧 병사를 훈련시켜 명을 기다려라. 천자는 제왕에게 밀조하여 진병(鎮兵)을 통솔해 이를 쳐라."'''|| 정난군이 군사행동을 시작하자 제태는 연나라를 속적(屬籍)에서 삭제하고, 그 죄상을 천하에 공표해서 토벌하자고 주장했다. 모두 "이건 조금 어렵지 않겠느냐"고 의견을 내놓았지만, 제태는 "이길 수 있다" 고 주장해 조정에서도 연왕을 상대하기로 결국 결정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